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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욥기 23장 욥이 말합니다. “앞으로 가도 그분은 계시지 않고, 뒤로 물러가도 보이지 않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침묵은 더욱 깊어집니다.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찾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 불안해집니다. 어디에 계신가. 내 말을 듣고 계신가. 찾아내려고 합니다.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욥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는 길을 아신다.” 여기서 무언가가 달라집니다. 나는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찾고 있는 나. 처음부터 보고 계셨던 하나님. 대부분의 사람은 이 방향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보고 계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욥은 비로소 자신이 보고 계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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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1분 분량


잠언 1장부터 7장까지의 풍경
잠언 3장을 읽다가 문득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1장에도 “내 아들아” 2장에도 “내 아들아” 3장에도 “내 아들아” 4장에도, 5장에도, 6장에도, 7장에도, “내 아들아” 라는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물론 잠언 전체에도 “내 아들아”라는 표현은 나옵니다. 그러나 1장부터 7장까지는 특별히 이 부르심이 반복됩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하나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아버지가 부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씀하십니다. 또 말씀하십니다. 거듭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아” “들으라” “귀를 기울이라” “잊지 말라” “마음에 간직하라” 아버지의 음성이 계속해서 울려 퍼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들이 무엇이라고 대답했는지는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응답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본문은 거의 말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부르심과 말씀이 계속 이어질 뿐입니다. 어느새 우리는 아들의 대답을 지켜보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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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1분 분량


내 아들아 (잠언 2장)
잠언 2장의 시작은, “내 아들아” 라는 부르심이다. 지혜가 아니다. 깨달음도 아니다. 설명도 아니다. 부르심으로 시작된다. 지식을 받기 전에 먼저 들려오는 부르심. 그 부르심으로부터, 귀를 기울이는 것, 마음을 기울이는 것, 부르짖는 것, 찾아 구하는 것이 이어진다. 그것은 지식을 모으기 위한 모습이라기보다, 말씀하시는 음성을 받아들이는 자세처럼 보인다. “그때에 네가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발견하리니” (잠언 2:5) 지식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내 아들아” 라는 부르심이 있다. 잠언 2장은 그 부르심으로 시작된다. 그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My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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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1분 분량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다 (잠언 1장)
오늘부터 잠언을 읽기 시작한다. 첫머리를 펼치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다” (잠언 1:7) 라는 말씀이 놓여 있다. 잠언은 지혜의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지식과 지혜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들려오는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지식에 대한 이야기보다 먼저, 서 있는 자리가 이야기된다. 지식을 갖기 전에, 먼저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누구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이것이 잠언의 시작일까. 욥도 그의 친구들도 많은 말을 했다. 질문이 있었고, 깊이 생각했으며, 계속해서 논쟁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은 것은 인간의 지혜의 크기가 아니라, 주께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이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다” 잠언은 지식의 시작, 그 출발점을 이야기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라고. 성경에서 지식을 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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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1분 분량


침묵을 계속하시는 하나님께 답답함을 느낄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욥기 24장 그 답답함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져간다. 욥이 말한다.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두지 않으시는가.” “악한 자들은 경계선을 옮긴다.” 불의가 행해지고 있다. 약한 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심판은 보이지 않는다. 왜 멈추지 않으시는가. 왜 보고만 계시는가. 불의는 계속되고 있다. 약한 자들은 고통받고 있다.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다. 욥은 그 답답함을 하나님께 계속해서 말한다. 불만을 삼키지 않는다. 침묵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답답함을 그대로 하나님께 향해 말하고 있다. 침묵을 계속하시는 하나님께 답답함을 느낄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답답함을 품은 채 하나님에게서 떠나는가. 아니면, 그 답답함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욥은 불의한 현실을 보고 있었다.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셨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답답함을 여전히 하나님께 향해 말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아직 침묵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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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1분 분량


욥기는 사람을 설명에서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이끄는 책이다
욥기 총정리 욥은 계속 질문했다. 왜 고난이 있는가.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왜 의로운 자가 고난을 받는가. 친구들은 설명했다. 죄. 인과응보. 하나님의 의로우심. 각자는 하나님에 대해 말했다. 욥 또한 말했다. 자신의 의로움. 고난.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침묵하시는 하나님. 엘리후는 말했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고 계신다고. 그러나 마지막에,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다. 폭풍 가운데서. 주님은 고난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셨다. 세상의 구조를 정리하지 않으셨다. 인과관계를 풀어 설명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 되물으신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욥기 38장 4절) 바다. 빛. 어둠. 별. 짐승. 리워야단. 주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으로 말씀하신다. 사람은 이해하려 한다. 설명하려 한다. 정리하려 한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사람을 자신의 앞으로 세우신다. 욥은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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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1분 분량


의로울 수 있는가 묻고 있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욥기 25장 빌닷의 마지막 말이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겠는가.” “달도 빛나지 못하고, 별들도 깨끗하지 못하다.” 하나님의 크심과 사람의 작음이 말해진다. 빌닷의 결론은 단순하다. 하나님은 크신 분. 사람은 작은 존재. 사람은 의로워질 수 없다. 이 말 자체에는 일정한 진실이 담겨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말이 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작음을 알게 될 때 침묵하게 된다. 그러나 그 침묵이, 하나님 앞에서의 침묵인지, 사람을 짓누르는 침묵인지는 다른 문제이다. 의로울 수 있는가 묻고 있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자신의 작음 속에 갇혀 있는가. 아니면, 그 작은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빌닷은 사람의 작음을 말했다. 그 말에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욥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말이 되지 못했다. 진실한 말이라 해도, 반드시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아직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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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1분 분량


들었다고 생각할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욥기 42장 마침내 욥이 응답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오랫동안 계속 질문해 왔다. 고난의 이유를 구했다. 설명을 원했다. 자신의 의로움을 말했다. 친구들 또한 계속해서 말했다. 의로움. 인과응보. 하나님에 대한 설명. 그러나 마지막에 남은 것은 설명이 아니었다. 주님 자신이었다. 욥은 말한다. “내가 주께 대하여 들었습니다.” 지식으로. 이해로. 설명으로. 그러나 이제, 욥은 주님 앞에 서게 된다. 여기서 욥기의 모든 흐름이 마무리된다. 고난의 이유는 끝까지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욥은 주님 앞에 서는 자가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들을 수 있다. 설명을 배울 수 있다. 이해를 깊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들었다고 생각할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지식 안에 머물고 있는가. 설명 안에 머물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 다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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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1분 분량


붙들어 주고 있다고 생각할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욥기 26장 욥이 대답한다. “힘없는 자를 참으로 잘 도와주었구나.” “참으로 놀라운 충고를 해주었구나.” 욥은 비꼬는 말투로 이야기한다. 친구들은 돕는다고 생각하며 말해 왔다. 옳은 말. 신학적으로 정리된 설명.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욥을 붙들어 줄 수 없었다. 욥은 말한다.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가.” 그 말 속에는 깊은 풍자가 담겨 있다. 사람은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옳은 말을 쏟아낸다. 그러나 많은 경우,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아픔으로만 남는다. 말이 옳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을 붙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붙들어 주고 있다고 생각할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자신의 옳음 안에 있는가. 아니면, 상대와 함께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욥은 친구들의 “도움”을 비꼬았다. 옳은 말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붙듦이 되지 못했다. 하나님은 아직 침묵하고 계신다. 옳은 말이 반드시 사람을 붙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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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1분 분량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스리려 할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욥기 41장 주께서는 리워야단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거대한 바다의 짐승. 사람이 붙잡을 수 없는 존재. 힘으로 가득하며, 두려움을 일으키는 존재. 주께서 물으신다. “네가 낚시바늘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느냐?” “그것을 네게 복종하게 할 수 있느냐?” 사람은 이해하고 싶어 한다. 지배하고 싶어 한다. 통제하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을자기 손 안에 넣고 싶어 한다. 그러나 주께서는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존재를 보여주신다. 리워야단은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사람의 힘으로 억누를 수 없다. 두렵고, 가까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 존재조차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사람은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안심하려 한다. 설명할 수 있는 것만받 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주께서는 보여주신다. “네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도 내 다스림 안에 있다.” 당신은 여전히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하는가. 아직도 스스로 붙잡으려 하고 있는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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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1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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