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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 잠언 7장
누구의 목소리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가?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 속에 간직하여라. 내 명령을 지켜 살아라. 내 가르침을 네 눈동자처럼 지켜라.” 잠언 7:1-2 “너를 음녀에게서, 매끄러운 말로 유혹하는 낯선 여자에게서 지키기 위함이다.” 잠언 7:5 겉으로 보기에는 엄격한 명령처럼 들린다. 성적인 유혹을 조심하라. 잠언 7장은 “내 아들아” 라고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창세기에도 명령이 나온다.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반드시 먹어라.” 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셨다.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너는 반드시 먹어라.” 창세기 2:16 그 후에야 먹어서는 안 되는 나무가 언급된다. 먼저 주어지는 것은 “받아라”는 명령이다. 이 또한 명령이다. 잠언 7장의 “내 명령을 지켜라”라는 말씀을 들을 때, 창세기 2장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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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1분 분량


그럼에도 바랄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욥기 19장)
욥이 말한다. “언제까지 나를 괴롭게 하려느냐.” “가까운 이들마저 나를 버렸다.” 사람도 떠나고, 말도 닿지 않는다. 욥은 고립되어 있다. 모든 것이 떠나간다. 사람. 의지할 곳. 이해. 남은 것이 없다. 그러나 욥은 말한다. “나는 안다.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신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나오는 말이 있다. 설명도 아니다. 변명도 아니다. 지식도 아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리에서 나오는 단 하나의 말. “나는 안다.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신다.” 무엇이 이 말을 하게 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바랄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이해받지 못한다. 버림받은 것 같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향한다. 사람의 신뢰도, 의지할 곳도, 이해도 잃어버린 욥. 마지막 끝에, 하나님께 이르려 한다. 그 모습은 경건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은,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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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1분 분량


인생을 무너뜨리는 것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잠언 6장)
잠언 6장은 의외의 곳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로 덫에 걸렸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그곳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다. 이어지는 것은 게으름에 대한 경고이다. 조금 더 자고, 조금 더 졸고, 조금 더 손을 모으고 쉬려는 마음. 이 또한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삶의 현실이 기록되어 있다. 보증. 안일함. 다툼. 간음. 잠언 6장은 거창한 이상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마주할 수 있는 작은 걸림돌에서 시작한다.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 비쳐 보이는 그 한가운데서,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고 네 어머니의 가르침을 버리지 말라.” 고 말씀하신다. 문득 걸음을 멈추게 된다. 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무엇을 말씀하려는 것일까. 일상 속에 숨겨진 위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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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1분 분량


생명의 날수가 말해질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욥기 20장 소발이 다시 말한다. "악인의 기쁨은 짧다." "그 즐거움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악한 자의 번영은 계속되지 않는다고 말해진다. 때가 강조된다. 지금은 번성하고 있어도, 곧 끝난다. 생명의 날수가 말해진다. 사람은 지금을 보고 판단한다. 잘 되고 있다. 고통받고 있다. 거기서 결론을 내리려 한다. 그대로, 욥에게 적용되어 간다. 때로 사람을 재단할 때, 하나님의 시각이 아니라, 사람의 개념에 치우친다. 지금이 좋으면 옳다. 지금이 나쁘면 심판받고 있다. 그 틀 안에서는, 욥의 현실이 보이지 않는다. 잠깐의 기쁨이 말해질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인생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을 재고, 타인을 판단하고 있는가. 소발은, 안개처럼 덧없는 사람의 나이를 말한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날수를 욥을 향해 심판한다. 하나님은, 아직 침묵하고 있다. 안개처럼 덧없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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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1분 분량


잠언 12장 1절
잠언 12:1의 날카로운 점은, 사람은 지식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갑게 받아들인다. 성경을 읽고, 강의를 듣는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는 것은 싫어한다. 잠언 12:1은, "지식을 좋아하느냐" 가 아니라, "교정받는 것을 사랑하느냐" 를 묻고 있는 것 같다. 지식의 양이 아니라, 교정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고 있는 것이다. 지식을 늘리고 싶은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교정받고 싶은가.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본문에 의해 자신이 교정받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은 적다. 그런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꾸짖음을 미워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 (잠언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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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1분 분량


보상받지 못할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욥기 21장 욥이 말합니다. “어찌하여 악인들이 살아가며, 나이가 들고, 세력이 강해지는가.” “그들의 집은 평안하고, 두려움이 없다.” 악인이 형통하는 현실이 이야기됩니다. 여기서 친구들의 논리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악인은 망한다. 의인은 보호받는다. 사람은 흔히, 의롭게 살면 보상받고, 악하게 살면 심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렇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욥은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의 논리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 역시, “나는 의로우니 보상받아야 한다.” 라는 전제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보상받지 못할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의로우니 구원받아야 한다는 전제를 붙들고 있는가. 욥은 현실을 보았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보상받지 못합니다. 악인이 형통합니다. 그의 질문은 “나는 의로우니 보상받아야 한다.” 라는 생각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하나님은 아직 침묵하고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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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1분 분량


아버지의 목소리와 또 다른 목소리(잠언 5장)
잠언 5장은 간음에 대한 경고, 음녀에 대한 경고로 읽히는 본문입니다. 물론 본문도 그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들려오는 것은 다른 목소리입니다.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이라.” (잠언 5:1) 먼저 들려오는 것은 음녀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목소리입니다. 아버지는 말씀하십니다. “주의하라.” “귀를 기울이라.” “들으라.” 그 부르심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목소리가 나타납니다. “대저 음녀의 입술에서는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럽다.” (잠언 5:3) 이 목소리도 사람을 끌어당깁니다. 귀에 달콤하게 들립니다. 마음에 편안하게 스며듭니다. 잠언 5장을 읽고 있으면, 단순히 간음에 대한 경고라기보다, 서로 대조되는 두 목소리를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의 목소리.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 아들은 그 사이에 서 있습니다. 어느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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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1분 분량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잠언 4장
כִּי־בֵן הָיִיתִי לְאָבִי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잠언 4:3) 이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솔로몬입니다. 그는 지혜의 왕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지혜자로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아들로 서 있습니다. 잠언 3장에서는, “내 아들아, 내 가르침을 잊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잊지 말라. 마음에 간직하라. 그 부르심이 이어지는 가운데, 잠언 4장에 들어서면 이번에는 말씀하는 아버지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솔로몬 역시 말씀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을 들었습니다.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듣는 자로 서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들으라.” “잊지 말라.” “마음에 간직하라.” 잠언 1장부터 이어지는 이 부르심은 지혜자가 위에서 내려다보며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한때 자신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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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1분 분량


하나님을 위해 의로워질 수 있는가 말할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욥기 22장 엘리바스가 다시 말합니다. “사람이 의롭다 한들 하나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네 악이 크지 않으냐?” 그는 욥에게 죄가 있다고 단정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시선이 바뀝니다. 의로움은 하나님께 유익이 되는 것일까요? 사람의 행위는 하나님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사람은 자신의 의로움을 가치로 삼으려 합니다. 옳은 것. 의롭게 사는 것.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께 향하기 시작할 때, 의로움은 거래처럼 변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을 보며, 그 원인을 찾고, 죄를 끼워 맞춥니다. 의로움을 하나님과의 거래로 만들고 있는 것은, 어쩌면 엘리바스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의로워질 수 있는가 말할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의로움을 하나님과의 거래로 삼고 있는가. 아니면 그 손을 펴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엘리바스는 죄를 단정했습니다. 의로움을 하나님께 향할 때, 그것은 응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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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1분 분량


“내 아들아, 내 가르침을 잊지 말라”
“내 아들아, 내 가르침을 잊지 말고 내 명령을 네 마음에 간직하라.” (잠언 3:1) 잠언 3장도 “내 아들아” 라는 부르심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가르침을 잊지 말라.” “내 명령을 네 마음에 간직하라.” 배워라, 이해하라, 보다 먼저, 아버지는 “잊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평안 가운데, 생명 가운데, 복 가운데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가르침” 이란 무엇일까요? “내 명령” 이란 무엇일까요? 답을 서둘러 내리기보다, 먼저, “내 아들아” 라는 부르심 앞에 잠시 머물러 봅니다. 답을 서두르지 말고,먼저 “내 아들아”라는 부르심 앞에 함께 머물러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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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1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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