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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처럼 (잠언 21장)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 안에 있는 물길과 같으니, 그분은 뜻하시는 곳으로 그것을 돌리신다." (잠언 21:1) 왕이 등장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왕이다. 그러나 본문은 왕의 권세보다 왕의 마음에 시선을 둔다. 원문을 들여다보자. 앞부분을 돋보기로🔍 פַּלְגֵי־מַיִם לֶב־מֶלֶךְ בְּיַד־יְהוָה (팔게 마임 레브 메레크 베야드 아도나이) "물길처럼,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 안에 있다." פַּלְגֵי־מַיִם (팔게 마임) 물길. 어? 시편 1편 3절의 "물길"과 같은 단어다. "물길 곁에 심은 나무." (시편 1:3) 생명의 풍경을 이루는 물길. 그 동일한 물길이 이번에는 왕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왜 왕의 마음은 물길에 비유되었을까? 뒷부분을 살펴보자. 뒷부분을 돋보기로🔍 בְּיַד־יְהוָה (베야드 아도나이) (알 콜 아셰르 야흐포츠 야테누) עַל־כָּל־אֲשֶׁר 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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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1분 분량


인간의 계획과 주님의 인도하심 (잠언 16장)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혀의 대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잠언 16:1) 말의 장이었던 잠언 15장을 지나면, 풍경이 조금 달라진다. 잠언 16장에는 사람이 자신의 길을 생각하는 모습이 여러 번 나타난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잠언 16:1)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잠언 16:9) “사람의 모든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깨끗하여도.” (잠언 16:2) 그러나 이 장은, 결국 정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라고 말한다. “혀의 대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잠언 16:1) “여호와는 심령들을 감찰하시느니라.” (잠언 16:2)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언 16:4) 사람은 생각하고, 주님은 헤아리시며, 주님은 정하시고, 주님은 인도하신다. 흥미로운 것은, 잠언이 “계획하지 말라” 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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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1분 분량


집을 세우는 여인 (잠언 14장)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고,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문다.” (잠언 14:1) בָּנְתָה (반타) 어근: בָּנָה (바나) 의미: 세우다, 건축하다, 일으키다, 집을 짓다, 가문을 세우다 תֶהֶרְסֶנּוּ (테헤르센누) 어근: הָרַס (하라스) 의미: 무너뜨리다, 헐다, 파괴하다, 허물다 흥미로운 점은, 이 말씀이 집안일을 잘하고 못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단순히 “좋은 아내가 됩시다”라는 교훈으로만 담아 두기에는 너무나 아깝습니다. 성경은 בָּנָה(세우다) הָרַס(허물다) 라는 매우 강한 대조를 우리 앞에 놓습니다. 더욱이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허문다”라고 말함으로써, 파괴의 주체가 바로 그 자신임을 ] 강조합니다. 여기에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בָּנָה(세우다) 는 창세기에서도 중요한 동사입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취하신 갈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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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1분 분량


말과 마음 (잠언 15장)
“온화한 혀는 생명나무이지만, 비뚤어진 혀는 영을 상하게 한다.” (잠언 15:4) 잠언 15장은 말의 장이다. 첫머리부터 이렇게 시작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언 15:1) ‘혀’, ‘입’, ‘입술’, ‘대답’, ‘말하다’라는 표현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장은 말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말 뒤에 있는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느니라.” (잠언 15:28)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나.” (잠언 15:13) 사람의 말과 마음뿐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주님의 시선도 반복해서 나타난다. “스올과 멸망도 여호와 앞에 있거든, 하물며 인생의 마음이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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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1분 분량


생명나무 (עֵץ חַיִּים)
잠언 13장을 걷다 보면, 그 한가운데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만나게 된다. 생명나무.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마음이 상하지만,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생명나무이다.” (잠언 13:12) 잠언 13장에는 일상의 격언들이 이어진다. 입을 지키는 것. 부지런함. 자녀를 훈계하는 것. 부와 가난. 이러한 말씀이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생명나무”(עֵץ חַיִּים)가 모습을 드러낸다. 생명나무는 잠언에 네 번 등장한다. 지혜는 생명나무이다. (잠언 3:18)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이다. (잠언 11:30)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생명나무이다. (잠언 13:12) 온유한 혀는 생명나무이다. (잠언 15:4) 성경 전체에서는 창세기 3회, 잠언 4회, 요한계시록 5회, 모두 12번만 등장한다. 이 표현의 첫 등장은 잠언이 아니다. 창세기 2장 9절이다. “주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모든 나무가 나게 하시고,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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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1분 분량


빛이 사라질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욥기 18장 결론이 먼저 있을 때, 보이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의 틀일지도 모른다. 빌닷이 다시 말한다. “악인의 빛은 꺼질 것이다.” “그의 등불은 사라질 것이다.” 악인의 결말이 선포된다. 결론이 먼저 제시된다. 악한 자는 멸망한다. 빛은 꺼진다. 결과는 분명하다. 사람은 결론을 원한다. 어떻게 될 것인가.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그것을 알면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론은 욥의 현실 위에 덧씌워진다. 빌닷은 결말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결말은 자신의 의로움에서 나온 것이다. 결론이 먼저 있을 때, 보이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의 틀일지도 모른다. 빛이 사라질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다른 사람이 내린 결론 속에 자신을 끼워 맞추고 있는가. 아니면 그 결론의 바깥에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빌닷은 결말을 말했다. 욥은 그 결론 속에 놓여 있다. 결론이 먼저 있을 때, 보이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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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1분 분량


생명나무로 가는 작은 길 (잠언 11장)
잠언 1장부터 9장까지는 “내 아들아” 라는 아버지의 음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길로 걸어가라.” “저 길로 가지 말라.” “지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10장에 이르면, 아버지의 가르침을 들은 후의 일상이 비춰지기 시작한다. 11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짧은 대조들이 쌓이며 마치 격언집과 같은 모습이 된다. 의인과 악인. 그 대조가 반복해서 나타난다. 10장에 비해,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사람은 무엇을 말하는가. 무엇을 나누어 주는가. 무엇을 신뢰하는가. 그 결과가 나타난다. 1장부터 9장까지는 아버지가 말한다. 10장에서는 일상이 비춰진다. 11장에서는 그 일상 속에서 그 사람의 내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의 마음을 얻느니라.”(잠언 11:30) 의인, צַדִּיק (차디크) 이란 누구인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인가. 잠언은 의인을 성실하게 행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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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1분 분량


잠언 10장 앞에 잠시 멈춰 서다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 잠언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 아들아” 라는 부름이 계속 이어진다. 들으라. 마음을 기울이라. 가르침을 버리지 말라. 그런데 10장을 펼치면 풍경이 달라진다. 격언집처럼 짧은 말씀들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표제는 “솔로몬의 잠언” 이번에는 왕이라는 칭호도, 다윗의 아들이라는 소개도 없다. 그저 솔로몬이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들어 온 독자들 앞에, 이제는 사람들의 삶이 펼쳐진다.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아들. 어머니를 슬프게 하는 아들. 의인. 악인. 지혜로운 자. 어리석은 자. 잠언 10장부터는 사람들의 실제 삶의 모습이 비춰진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머니의 근심이니라.” (잠언 10:1)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던 독자는, 이제 그 말씀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잠언 10장을 펼치면, 풍경이 달라진다. 잠언 10장을 펼치면 풍경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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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1분 분량


두 개의 식탁 ― 잠언 9장
잠언 8장에서 지혜는 스스로 말하였다. “나는 지혜이다.” 지혜는 성문에서, 사람들이 오가며 모이는 곳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잠언 9장에 이르면, 지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제 집을 세우고, 식탁을 차리고, 사람들을 초대한다.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포도주를 마시라.” 지혜는 단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식탁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러나 잠언 9장에는 또 다른 초대가 있다. 어리석음도 목소리를 높인다. “훔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빵이 맛이 있다.” 지혜도 초대한다. 어리석음도 초대한다. 둘 다 사람들을 자기 식탁으로 부른다. 잠언 7장에는 두 개의 음성이 있었다. 아버지의 음성. 음녀의 음성. 잠언 9장에는 두 개의 식탁이 있다. 지혜의 식탁. 어리석음의 식탁. 잠언은 반복해서 묻는다. 어떤 음성을 들을 것인가. 어떤 초대에 응답할 것인가. 어느 식탁에 앉을 것인가. 우리는 매일 무언가의 초대를 받으며 살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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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1분 분량


지혜의 음성에 귀 기울이다 ― 잠언 8장
잠언 7장에는 두 개의 음성이 있었다. 앞부분에는 아버지의 음성이 있다.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 속에 간직하라.” 뒷부분에는 음녀의 음성이 있다. “오라. 사랑을 즐기자.” 잠언 7장에는 아버지의 음성과 음녀의 음성이 나란히 놓여 있다. 잠언 8장에 이르면,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אֲנִי־חָכְמָה “나는 지혜이다.” (잠언 8:12) 라고 말씀한다. 지혜 자신이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잠언 7장에서는 여러 음성이 들린다. 잠언 8장에서는 지혜의 음성 자체가 전면에 나타난다. 잠언 7장은 “어떤 음성을 들을 것인가” 를 묻는다. 잠언 8장은 “지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로 우리를 이끈다. 잠언 8장은 지혜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도록 독자를 초대하는 장이다. 나는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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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1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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