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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이여 — 아가 1:9

8월 28일
2분 분량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 아가 1:9



לְסֻסָתִי בְּרִכְבֵי פַרְעֹה

(레수사티 베리크베 파르오)


“바로의 병거들 가운데 있는 암말에”


דִּמִּיתִיךְ רַעְיָתִי

(딤미티크 라야티)


“내가 너를 비유하였다, 나의 사랑이여.”




그녀는 계속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9절.


이번에는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너를 바로의 병거들 가운데 있는 암말에 비유하겠다.”


갑자기 뭐지!!


아가…… 역시 쉽게 걷게 해 주지 않는다. (◎_◎;)


먼저,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만 놓아 본다.


8절에서는,


“여자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이여.”


9절에서는,


“바로의 병거들 가운데 있는 암말.”


아름다운 여인을 암말에 비유한다.


그것도 그냥 암말이 아니다.


바로의 병거들 가운데 있는 암말.


여기까지가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것.


그리고 여기서 손이 멈춘다.


……그런데, 왜 바로지??


그냥 병거가 아니라 “바로의 병거.”


“목자의 병거”도 아니고,


“왕의 병거”도 아니다.


바로.


“바로”라는 말을 들으면 출애굽기 14장의 장면도 떠오른다.


이스라엘을 뒤쫓는 바로의 병거들.


병거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추격하는 바로.


그리고 그 바로의 병거들 한가운데,


암말 한 마리.


강한 힘을 가진 존재를 등장시키면 시킬수록,


그 가운데 있는 암말 한 마리의 존재감은 더욱 커진다.


……본문이 이런 것까지 말하고 있는 걸까.


여기서 본문 밖에 있는 당시의 풍경 하나를 잠시 빌려 본다.


고대 이집트에는 병거 부대 가운데 암말이 풀려나 수말들이 동요할 뻔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고 한다.

만약 그 풍경이 9절에도 어딘가 울리고 있다면,


그녀는 단지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병거 부대가 평정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존재가 된다.


……뭐지?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빌려온 풍경이다.


아가 자체는 왜 “바로”라고 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니 일단 동그라미만 쳐 두고,


그대로 놓아 둔다.


그러고 보니,


4절에도 “왕”이 있었다.


1:4“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셨다.”


1:7“당신은 어디에서 양 떼를 먹이십니까?”


1:9“바로의 병거들 가운데 있는 암말.”


왕 → 목자들의 세계 → 바로.


다시 큰 힘의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 나타났다.


전에 발견했던,


“왕인 줄 알았는데, 양을 치고 있다.”


그 풍경 위에 또 한 장의 풍경이 겹쳐진다.


궁정에서 들판으로 나온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바로의 병거들이다.


아가는 아직 그를 붙잡게 해 주지 않는 것만이 아니다.


풍경마저 붙잡게 해 주지 않는다.


일단,


“바로”라는 말에 연필로 동그라미를 쳐 둔다.




검은색 테이블 위에 노트북과 커피 한 잔, 쿠키가 담긴 그릇이 놓여 있는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일단, “바로”라는 말에 연필로 동그라미를 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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